회사 생활은 연봉이 다가 아니다

최근들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코로나 팬데믹과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물결에 힘입어 조금씩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거대 IT 기업들의 쏘아올린 공으로 프로그래머들의 연봉 수준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프로그래머들의 연봉 인상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본 글이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많은 연봉을 받는 건 아니지만 IT 대기업들의 급격한 연봉 인상으로 인해 다른 IT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의 수요가 많은 것에 비해 인력 공급이 부족하니 생기는 현상이다.

IT 인력 시장도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다. 현재 IT 업종에서 프로그래머들의 인력 부족은 여전하다. 10여년 전에도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들은 부족했다. 그러나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관련 인력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인력 부족은 계속되고 있다. 전공자 외에도 학원에서 수강하여 바로 투입되는 인력들도 지속적으로 공급되지만 그 수요는 여전히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그래머들의 처우나 대우가 좋고 그런것은 더더욱 아니다. 위에 링크 걸어놓은 글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네카라쿠배”라고 불리는 IT 서비스 대기업들은 대우가 좋은 편이다. 또한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의 대형 게임 회사들도 처우나 대우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중견 규모의 회사만 가도 처우나 대우는 많이 나빠진다.

대우가 좋은 IT 대기업의 자리는 여전히 한정적이다. 따라서 그런 대기업을 가기 위해서는 입사 조건을 통과해야 하므로 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수의 프로그래머들은 중견 혹은 중소 규모의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필자도 여태 중소 & 중견 규모의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현재도 중견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IT 대기업을 가려고 해도 내게 맞는 포지션의 일을 채용하지 않거나 IT 대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는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연봉이나 처우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은 없다. 물론 연봉은 일반 직장인들이 체감하기에 “한 가족이 딱 먹고 살만한 생활비 수준” 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딱히 적은 수준도 아닌 적당한 수준이다. 

프로그래머들의 연봉은 최근에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많은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다. 철저하게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연봉은 책정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프로그래머들에게 높은 연봉을 책정할 여력이 충분하지만 중소 & 중견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하지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대다수의 프로그래머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프로그래머들의 생각과 현실은 늘 충돌을 일으킨다. 어느 직장인이든 간에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하는 것 처럼 프로그래머들도 자신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연봉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 종사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연봉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네카라쿠배” 라고 불리는 IT 대기업들은 규모가 크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만큼 프로그래머들에게 많은 연봉을 지급한다. 연봉 뿐만 아니라 처우, 복지제도 등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반면에 중소 & 중견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라고 해도 대기업에 비해 프로그래머들에게 지급하는 연봉은 훨씬 적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들에 재직중인 프로그래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대기업 보다는 중견 & 중소 기업에서 재직중인 프로그래머들이 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주로 중소 & 중견 기업에서 일을 했는데 연봉은 한곳에 있는 것보다 이직을 해야 오르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에 있던 간에 프로그래머들의 업무량은 그리 만만치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프로그래밍 업무가 더 많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기업에서 두세사람이 할것을 중소기업에서 한사람이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 기업에 재직중인 프로그래머들의 불만은 더 쌓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기업을 다녀야 하는가?

갈수 있다면 가는게 맞는 방법일 것이다. 대기업은 규모에 걸맞게 성과에 따른 보상도 잘 이루어지고 처우나 환경이 좋으며 인원도 많은 편이어서 업무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일의 양이 적다는것은 결코 아니다. 상대적으로 책임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또다른 장점은 “업무 프로세스”의 구체화가 있다. 필자가 중견 & 중소에 주로 다녀본 경험으로는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의 개발 과정이 정말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설계부터 개발, 테스트 과정이 정말 뒤죽박죽인 곳들이 있다. 설계를 하지 않고 바로 개발에 들어가서 빠른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적절한 테스트는 건너뛰고 마구잡이로 제품을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의 제품들이 나름 시장에서 많이 쓰이는 것도 그만큼 그 기업만의 “업무 프로세스”가 적절하게 분산 및 구체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이 업무를 분담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이 신경써야 될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개발과 유지보수에만 신경쓸 수 있다.

반면에 중소 & 중견기업은 이런 업무 프로세스가 적절히 갖춰줘 있는 곳이 상대적으로 비율이 적다. 인원도 적고 쓰는 비용도 적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이 신경써야 될 업무가 훨씬 많은 것이다. 개발, 유지보수 뿐만 아니라 테스트, 제품 생산까지 신경써야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적은 연봉에 많은 업무 부담까지… 중견 & 중소에 재직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이런 이유로 오래 다니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업무는 많지만 많은 연봉과 좋은 복지제도, 프로세스가 갖춰진 “대기업”에 재직하는게 당연히 좋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에 다닌 경력은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경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을 다니는게 정답인걸까? 그건 결코 아니다.

삼성전자 사옥

대기업을 다녀본 직장인들은 알겠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특유의 “조직문화”가 있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고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또한 “업무 프로세스”가 잘 짜여져 있는 만큼 일반 직원들의 자유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특히 프로그래머들은 이런 조직적이고 보수적인, 자유도가 떨어지는 기업문화가 굉장히 어색하고 답답할 수가 있다. 일을 진행하려면 결제를 일일이 받아야 하고 검토에도 시간이 걸리며, 보안 이슈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그만큼 그런 부분에 신경쓸 일이 많아진다. 물론 프로그래밍에 좀더 집중이 가능하겠지만 훨씬 보수적이고 조직적인 문화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안맞을 수 있는 것이다. 

“네카라쿠배” 나 게임회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고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가 이들 회사에만 있는게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 걸쳐서 있기 때문에 이들 회사 말고 제조 대기업에 종사하게 되면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경험할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이런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대기업에 갈 스펙이 되지도 않지만 설사 불러준다고 해도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을 많이 주면 그만큼 내가 손해보는 일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견 & 중소 기업중에는 수평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가 존재한다. 물론 그런 회사는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찾아보면 있다. 프로그래머들에게 지급하는 연봉이 높지는 않더라도 좋은 기업 문화, 복지제도, 워라밸 등등이 좋은 회사가 존재한다. 이런 회사들은 프로그래머들에게 일하기 괜찮은 회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을 가는 것만이 가장 좋은 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대기업도 대기업 나름인데 좀더 수평적이고 성과에 따른 보상이 어느정도 있는 대기업들은 괜찮겠지만, 보수적이고 수직적이며 합리적이지 않은 장시간 근무 선호, 과도한 업무량, 특유의 제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프로그래머들에게 그닥 일하고 싶지 않은 회사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제조업”에 대해 적어놓은 글이다. 주로 중견 & 중소 제조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많았지만, 주변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제조 대기업”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름 선망하는 기업에 어렵게 입사하였지만 제조업 특유의 조직문화와 업무 프로세스에 실망을 하고 “퇴사”를 결심한 프로그래머들의 사례가 꽤 많다. 물론 제조업은 중견 & 중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그래머가 어떤 스타일의 회사를 가야 한다는 규칙이 정해진 것은 당연히 없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회사를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회사라는게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알아보고 평판을 대략 조회해본 다음에 가는 수 밖에 없다.(최근에는 회사 리뷰 서비스들이 많이 활성화 됐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잡 플래닛”)

내가 신입 프로그래머 시절만 하더라도 “기업 평판 조회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하는 회사에 대한 정보가 사실 거의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회사의 규모이다. 아무래도 회사의 규모가 크면 작은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을꺼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은 많이 달라진 듯 하다.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그래머가 일하기에는 “대기업”이 더 낫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대기업은 “연봉” 적인 부분에서도 중소 & 중견 기업보다 훨씬 많이 주고 성과급도 두둑히 챙겨준다. 그럼에도 “대기업”이 프로그래머가 일하기에 좋은 기업이 아닌 이유는, “조직 문화”에 있다.

규모가 크고 유명한 기업일수록 “조직 문화”가 매우 보수적이거나 수직적일 수 있다. 거기에 프로그래머가 가장 적응하기 어렵고 어려워 하는 것은 “극심한 사내 정치”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느끼는게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를 가던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적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많다보니 경쟁이 심하고 그래서 체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프로그래머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정말 회사에서 “프로그래밍”만 하고 싶다. 하지만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프로그래밍 실력 외에 “정치”가 필요하게 만든다. 현재 재직중인 회사에서 오래 다니려면 윗사람에게 아부도 해야하고 괜한 액션도 취해줘야 한다. 이런 점은 프로그래밍 능력과는 별개인 듯 하다. 

대기업들은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은 매우 좁다. 따라서 사내 정치가 더 심한편인데, 프로그래머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로써 성과를 내도 상대방들의 정치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오래 못다니고 이직이나 퇴사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회사는 “연봉”이 높은 회사가 결코 아니다. 연봉이 높으려면 나에게 연봉을 많이 지급하는 회사를 가야 하는데 그런 회사들은 “대기업”이 될 것이다. “대기업”을 다니려면 그만큼 성과에 대한 부담과 특유의 조직문화, 사내 정치 등의 험준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즉 많은 돈을 받는대신 그만큼 그 댓가가 큰것이다. 

적당한 연봉에 적당한 업무량 그리고 나름 수평적인 문화에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중소기업이라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그래머는 일할 때 재미있고 행복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본다. 

매일같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수직적인 조직 문화, 사내 정치등은 내겐 오래 못견디게 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그 정도가 심한 대기업은 내 기준에는 “좋은 회사”는 결코 아닌 셈이다. “네카라쿠배”라는 IT 서비스 대기업들이 만약 이런 문화라면 결코 좋은 회사들이 아닌 셈이다. 

최근에 다니던 회사에서 과도한 업무, 수직적 조직 문화 등을 겪고 나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이직을 감행했다. 물론 가려는 회사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도 우려했던 점에 비해 나름 자유롭고 수평적이어서 일하기에 괜찮은 회사로 판단이 되고 있다. 

물론 이 회사도 1~2년 지나보면 그 실체가 드러날지 모른다. 즉 내가 그 회사에 더이상 못있게 옭아맬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난 또다시 “이직”을 생각하거나 아예 “창업”을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그래머는 과도한 부담을 주고 사내 정치에 휘말리게 하는 거보다 성과를 낼 수 있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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