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Fabless) 반도체에 대해 알아보자
대한민국 경제의 위상을 보여주는 업종 중에는 IT/전자 산업이 있다. 특히 국내 전자 업계 중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가전계의 선두주자 LG전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다음으로 유명한 회사인 SK 하이닉스가 있다.
이들 3사는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고 매출액도 많으며 전자 업계중 기술력으로도 탑을 자랑하는 회사이다. 특히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매출액으로 세계 1~2위를 다툴정도로 그 위상이 엄청나다.
따라서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이들 회사들은 누구나 아는 회사들이고 실제 취업 시장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회사이다. 방송 뉴스나 신문에서도 경제 현황 소식을 전할때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의 매출액과 실적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고 자료화면에서는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일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위의 사진같이 자료화면에서 흰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반도체 공정 작업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런 장면이 인지가 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도체를 설계한다고 하면 위의 사진과 같은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편견(?)” 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반도체를 설계하는 일은 과연 위의 사진과 같이 흰색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설계를 하고 일을 하는 것일까? 이번 포스트에서는 반도체 설계 과정과 “팹(FAB)리스” 반도체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팹리스(Fabless) 반도체 회사
얼마전 코도도사 사이트 글중에서 어떤 질문자가 H/W에 관한 질문을 한적이 있다.
“임베디드 리눅스를 하려면 H/W를 잘 알아야 하나요?”
프로그래머라고 하지만 임베디드 리눅스 및 임베디드 시스템 관련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H/W를 아는게 많은 도움이 된다. 하드웨어(H/W)를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임베디드 리눅스 시스템을 파악하고 개발하는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임베디드 시스템에서 주요 하드웨어 중 하나는 메인 두뇌라고 알려져 있는 CPU다. CPU의 특징에 대해 잘 파악하고 개발을 진행하면 그만큼 수월해 질 수 있다. 물론 임베디드 리눅스 프로그래머가 CPU의 모든 특징과 기능을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 개발에 필요한 부분만 파악하면 된다.
CPU를 파악하면 자연스레 CPU와 물리적으로 연결된 외부 패리패럴들과의 데이터 통신에 대해 파악이 가능해진다. CPU를 먼저 파악하는게 패리패럴들을 파악하는데에도 수월한 셈이다.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CPU”. 여기서 궁금해진다. CPU는 어떻게 제조를 할까? (물리적인 공정 설명은 제외)
간단하게 설명하면, 설계자가 논리 회로를 직접 그리거나 HDL이라는 언어를 통해 회로를 구현한 다음, 회로의 정상 동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통해 테스트를 진행한다. 테스트가 끝나면 회로 검증이 끝났기 때문에 회로 합성 및 최적화 작업을 거쳐 반도체 공정 과정을 거치면 CPU 제조가 완료되게 된다.
현재 CPU를 제조할 수 있는 회사들은 전세계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산업이 발달한 국가들 위주로 꽤 있는 편이다. CPU는 다른 용어로 “비 메모리 반도체” 라고도 한다.(물론 CPU외에도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반도체를 통칭해서 “비 메모리 반도체”라고 부른다.)
인텔, AMD,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등으로 대표되는 제조사들은 다국적 기업이지만 본사는 미국에 있다. 최근까지 많이 사용하고 있는 CPU 들의 제조사들은 미국 회사들이 많은 편이다.
미디어텍, 리얼텍 등으로 유명한 제조사는 대만 회사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굴기”로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도 크고 작은 비 메모리 제조사들이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CPU 제조사가 나름 있는 편이다. 최근까지 CPU 제조를 하고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이다. 스마트폰에 탑재한 “엑시노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는 크고 작은 중소 제조사가 한국에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지는게 있다. CPU 제조사로 유명한 인텔, AMD, 엔비디아 같은 제조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규모가 작은 중소 제조사들은 공정 팹(FAB)을 다 갖추고 있을까? 우리가 자료 화면으로 보는 반도체 제조사들은 흰 방호복 차림에 팹에서 일하는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정도가 대형 팹(FAB)을 보유 하고 있고 나머지 회사들 중 DB하이텍(구 동부하이텍) 정도가 팹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소 반도체 제조사가 있지만 실제적으로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유명 CPU 제조사인 퀄컴, AMD, 엔비디아 등도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들 회사들의 매출 규모는 엄청난 편인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사실 공정 “팹”을 보유하는 것은 엄청난 투자 비용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즉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건데, 이들 팹 자체를 구축하는 것도 꽤나 어려운 기술에 속한다. 유명 CPU 제조사인 인텔의 경우에는 팹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외에 퀄컴, AMD,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의 매출 규모가 큰 회사들은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팹을 운영하면서 반도체를 설계하는 비용보다 팹이 없이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실제 반도체 생산은 “팹”을 보유한 기업에 맡기는게 더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이들 반도체 기업들을 “팹리스(Fabless)” 반도체 회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회사들의 매출과 비슷한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팹을 보유하고 있다. 즉 삼성전자는 “팹리스” 기업이 아니다. (SK 하이닉스도 마찬가지)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와 공정을 동시에 수행하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 즉 종합 파운드리 회사이다.
따라서 반도체 제조 회사들의 분류는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될 수 있다.
- 종합 파운드리 : 반도체 설계 + 공정 및 외주 생산을 종합적으로 하는 회사
- 파운드리 전문 회사 : 팹(FAB)을 운영하면서 위탁 생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
- 팹리스 : 반도체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맞기는 회사
종합 파운드리는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있다. 이들 회사들은 설계부터 공정 및 자체 생산, 위탁 생산들을 전부 수행한다. 몇년전 뉴스에서 애플 CPU의 위탁 생산 업체가 삼성전자 인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운드리 전문회사는 말 그대로 “파운드리(위탁 생산)” 위주로 매출을 올린다. 가장 유명한 회사는 전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대만국적의 “TSMC” 이다. TSMC는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기술 경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DB 하이텍이 파운드리 전문 회사로 유명하다.
이 외에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대부분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유명한 반도체 기업들도 팹리스 기업들이 많고 중국, 대만, 한국의 중소 반도체 기업들은 “팹리스(Fabless)”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팹리스 형태로 기업을 운영하는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꽤 유리한 편이다. 과거에 반도체 제조는 투자 여력이 충분하고 기업 규모가 큰 “삼성전자”, “하이닉스” 정도가 반도체 제조가 가능했다. 그 이유는 생산 설비 구축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 설비(FAB)를 만드는데에도 천문학 적인 돈이 들지만,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거 자체도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반도체는 설계 + 테스트 단계에서 잘 설계했다고 해도 막상 생산을 하고 나면 이상 동작을 한다던지 실수로 인해 설계가 잘못되었다면 그 생산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까지만 해도 비용이 꽤나 소모되는데 잘못 생산된 반도체면 회사의 손해는 클 것이다.
따라서 중소 규모의 기업들은 반도체 제조가 쉽지 않다. 설계 단계에서 실수라고 하게 되면 그 반도체를 수정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투자 비용을 날리는 셈이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도체 설계 및 테스트 단계에서 충분히 수정이 가능한 플렉서블 반도체가 등장(대표적으로 FPGA)하고 팹리스라는 사업 모델이 각광을 받으면서 중소 규모의 기업에서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 벤처 붐이 일면서 팹리스 반도체 기업들이 무수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의 팹리스 중에서는 “엠텍비젼” 과 “코아로직” 이라는 팹리스 회사가 한때 성공을 했지만 현재는 이들 기업들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채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한국의 중소 팹리스 회사들은 한때 잘 나갔지만 현재는 대만이나 중국등의 경쟁 업체들에 밀려서 많이 사라지거나 인수 합병등의 암흑기를 거치고 있는 상태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에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로 대표되는 세계 1위의 영광을 현재도 유지하고 있지만 비 메모리 분야에서는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한때 팹리스 회사에서 몸담았던 필자로서는 많이 아쉬운 상태다. 물론 현재도 한국의 잘나가는 팹리스 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경쟁국가인 중국이나 대만의 성장에 비해서는 많이 더디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서 “팹리스”의 활약이 좀 아쉬운 편이다. (내 일자리도 연관되어 있기 떄문에~~ㅎㅎ)
국내 팹리스 회사는?
팹리스에 대한 개념을 알아봤다. 그럼 국내 팹리스 회사는 어떤 곳이 있을까? 2000년대 초 벤처 붐이 일면서 수많은 팹리스 회사들이 생겼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매출을 올리는 회사들이 있는 어떤곳들이 있는 지 알아보자.
- LX세미콘(실리콘웍스)
- 에이디테크놀로지
- 제주 반도체
- 어보브 반도체
- 아나패스
- 텔레칩스
- 앤씨앤
- 동운아나텍
- 알파홀딩스
- 피델릭스
- 아이에이
- 픽셀플러스
- 티엘아이
- 아이앤씨
- 에이디칩스
- 칩스앤미디어
- 엘디티
위 나열순은 매출액 기준이다. 최근에 LX 계열사로 편입된 LX세미콘(구 실리콘웍스)은 최근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꽤 성공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회사들은 3천억 미만의 년간 매출 규모를 보이고 있다. LX 세미콘 정도의 매출 규모를 자랑하는 팹리스 회사들이 없는게 다소 아쉽다.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 같이 대형 팹을 보유하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점유율 1~2위를 다투지만 반면에 비 메모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이다.
메모리 반도체 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즉 비 메모리 분야에서도 기술을 축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대만의 경우에는 미디어텍과 리얼텍이라는 시스템 반도체 전문 팹리스 회사가 있다. 이들은 매출 규모도 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회사들이다.
보통 한국을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반쪽짜리 강국이라고 볼 수 있다. 부가가치가 큰 반도체는 CPU나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창 “가상화폐”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위한 장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카드 칩셋이 필요하다. 그래픽 카드 칩셋은 빠른 시간 내에 연산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채굴 장비에는 필수적이라고 한다.
가상화폐가 이슈가 된 덕분에 최근 GeForce 그래픽 카드는 없어도 못 팔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또한 그래픽 카드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서 비싼 가격을 들이고도 그래픽 카드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래픽 카드 얘기를 꺼낸것은 그만큼 향후 부가가치가 큰 아이템은 “시스템 반도체”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최근에 대두되는 여러 아이템들(IoT, AI 등등)에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는 당연히 비메모리 반도체 즉 시스템 반도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도 중요한 기간 산업이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팹리스 기업”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같은 대형 팹리스 기업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나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칩으로 시스템을 개발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