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을 떠나며……그리고 새로운 시작
최근 몇년동안은 나의 프로그래머로써의 정체성과 다니는 회사와의 관계에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던거 같다. 프로그래밍이나 개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재밌고 보람된 일이었지만 직장생활 자체는 그리 평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리눅스 프로그래머와 제조업”에 대한 글을 작성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던 회사들만 문제이고 위기라고 생각했지 제조업 전체에 대한 심각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이직한 회사에서 대한민국 제조업의 단면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니 이제는 정말 위기가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제조업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듯 하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6개월 정도 있는동안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다. 제조업의 단점과 나쁜 기업 문화이다. 대충 어떤 것일까?
- 경력 프로그래머라고 하지만 입사 첫날부터 실무에 투입됨.
- 장비를 개발하는데 투입하는 시간이 상상 초월. 무려 2달만에 개발 완료 및 양산 시작
- 임베디드 리눅스 프로그래머이지만 웹 GUI 개발에도 투입.
- 임베디드 리눅스 프로그래머이지만 윈도우즈 GUI 프로그램(파이썬 + Vue.js) 수정 개발 검토 및 투입 됨. 검토 및 소스 분석 하다 일정 변경으로 취소.
- 이 모든것을 동시에 진행함. 하드웨어 이슈 발생시 그 부분 이슈 해결 처리.
- 야근을 강요하지 않지만 팀원 전부 자발적으로 야근 하는 분위기. 나 같은 경우는 정말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정.
-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개발을 완료했지만 정작 완료하고 나서는 검증 방향에 대한 관리자의 생각이 없음. 검증은 내가 알아서?
- 2달짜리 프로젝트를 완료하자마자 밀려있던 프로젝트 진행 시작. 이 프로젝트도 장비 개발을 3개월만에 개발 완료 일정임.
-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도 다른 개발 이슈가 터지면 해결을 위해 회의 소집. 여기에 시간 할애하느라 일정 밀리지만 프로젝트 개발 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
- 내가 맡은 담당 파트는 나 혼자 할수 있는 상황. 관련되어 있는 이슈만 생기면 왠종일 불려다님. 개발도 하지만 이슈 처리도 해야 하고 외부 지원 및 외근도 가야함.
- 개발을 하려는데 테스트 장비가 없어서 정상적인 테스트를 하지 못함. 그래서 자꾸 꼼수만 쓰게 된다.
- 개발 진행 & 이슈 처리 & 외부 지원 & 외근 을 동시에 진행하는 상황에서 H/W 테스트를 위해 펌웨어 다운로드 까지 동시에 지원.
- 인력이 없으니 관련 업무가 생기면 내가 개발 부터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구조. 물론 일정이 밀려도 개발 완료 일정은 정상적으로 최대한 빨리 해야함.
정말 정신이 없었다. 개발 인력이 없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시피 했다. 임베디드 리눅스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하려고 들어왔지만 웹 GUI와 윈도우즈 GUI 프로그램까지 해볼 줄을 생각도 못했다. 물론 리눅스 어플리케이션은 당연히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관리자는 개발 인력이 어떤 포지션을 잘하고 어떤 업무에 투입되어야 효율적으로 개발이 진행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단순히 개발 일정이 급하므로 최대한 놀고 있는 인력을 급한 이슈에 투입해서 땜방하는 식이다. 뭐 입사 첫날부터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으니 할말 다했다.
일정도 정말 너무나 급박하고 불가능한 일정을 짜놨다. 정말 개발자들만 죽어나는 일정인 셈이다. 아무리 어필을 해도 관리자들은 확고하다. “최대한 해보는데까지 해보자.” 라는 말만 반복한다.
따라서 야근을 필수다. 그리고 야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모양이다. 나쁜 개발 문화와 조직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회사다. 개발 체계도 없고 외부 인터럽트를 적절히 처리하지 않고 담당자들에게 떠넘기는 일도 허다하다.
가장 황당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2달짜리 프로젝트를 어떻게 어떻게 해서 급하게 완료했지만 정작 완료했음에도 검증 절차에 대한 체계가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어떤 소프트웨어이던 간에 프로그래머가 짠 소스가 완벽한게 어디 있는가? 프로그래머가 하든 별도의 검증 인력이 검증을 하던 간에 검증 단계는 필수이지 않는가. 그런데 검증 인력이나 부서도 없고 검증 프로세스도 전혀 없다. 이대로 잠깐 담당자가 테스트를 해보고 별 이상 없으면 양산을 하자는 얘기를 꺼낸다.
내가 이전 회사들에게서 겪었던 단점보다 더한 단점들이 많은 곳에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 회사에 잘나가는 제품들이 있거나 프로그래머가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제품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게 최악인 상황인 셈이다.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도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개발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체계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미래도 없는 곳에서 단순히 월급 받겠다고 여길 다닌다는 것은 내 커리어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소지가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쉴 틈을 주지 않으니 번아웃이 이미 와버렸다.
솔직히 쉬고 싶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내 방향에 있어서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제조업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난 프로그래머 생활 대부분을 “제조업”에 종사하며 보냈다. 잠깐 2년정도 IT서비스 기업에 있었지만 그 이후엔 다시 제조업으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단순히 “임베디드 리눅스 개발이 좋아서” 이다.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장치/장비는 매우 흥미롭다. 내가 이 앞에서 쓴 글에도 이런 부분을 언급하였다. ARM 기반의 저전력 CPU에 리눅스라는 오픈소스로 된 OS를 올려서 여러 기능을 동작시키는 장치/장비들은 현재도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고 있다. 우리 실생활에도 필수인 “스마트폰” 중에서 안드로이드 기반 폰들은 임베디드 리눅스의 커널이 탑재되어 동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와 밀접하다.
시간이 없어서 해보지 않은 여러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개발 프로젝트들도 많다. 얼마전에 시작한 OpenWRT 기반의 프로젝트도 한 예이다.
이처럼 관심도 많고 재미도 있었지만 현 회사에서 “제조업”이라는 업종에서 개발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다 주게 되니 이제는 무대를 살짝 다른곳으로 옮기는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제조업에 실망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 회사는 내게 “쐐기골”을 넣은 셈이 된다.
왜 제조업 회사들은 이처럼 프로그래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까? 여기에 대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물론 짐작 가는 포인트는 있다.
- 중소 & 중견 제조 기업들의 기업문화는 80~90년대에 갖힌 회사들이 많다. 보수적이며 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물론 프로그래머들도 예외는 아니다.
- 제조업 회사들은 공장에게 물건을 생산하듯이 프로그래머들도 키보드 몇번만 두드리면 짠! 하고 성과물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리자들이 많다.
- 특히 대한민국 제조업 기업들은 현재 트랜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많다.
- 특유의 군대문화와 수직구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 프로그래머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
- IMF 이후로 경쟁이 심해지고 대기업은 성장하는 대신 중견 & 중소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감축 및 최소 인력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들 1명 뽑으면 최대한 부려먹으려고 한다.
- 국내 제조업 기업들은 개발 체계나 철학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 거의 없다. 단순히 경력 프로그래머들만 채용하여 투입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곳이 많다.
-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프로그래머들이 많이 없다. 그래서 항상 인력이 부족하지만 제조업 기업들은 인력 채용에 인색하며 채용하더라도 많은 돈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 인력이 부족하니 개발 리소스는 부족하고 프로그래머들은 그만큼 일정에 쫒기면서 바쁘게 개발을 한다. 결과물이 좋을 수 없으며 못 버티는 인력이 나가면 남아 있는 인력들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물론 관리자들은 개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 이직을 한다고 해도 국내 제조업 기업들의 문화는 다 거기서 거기다. 수평적이고 개발 체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 이런 문화에 익숙한 대졸 신입들은 아예 임베디드 쪽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력은 늘 부족하고 악순환은 다시 반복된다.
- 개발을 하려면 적절한 비용과 테스트 장비 등이 필요한데, 중견 기업 이하로는 이런걸 확보하는게 어렵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들이 고생하게 된다.
나름 제조업에서 잔뼈가 굵은 나지만 이제는 위에서 언급한 부분 때문에 많이 지친 편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즐기면서 하는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재미는 있을지언정 환경이 너무 악화되다 보니 이제는 “제조업”을 잠시 떠나있는게 내게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현재 회사에 재직중이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여 알아봤다. 그리고 제조업 회사는 아예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알아보다 보니 전부 제조업 회사에서 오퍼가 왔지만 전부 끊어버렸다.
막상 알아보니 IT 서비스 회사쪽에 옮기는 것은 쉽게 않은 듯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력이랑 맞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주로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경력이 많아서 리눅스 기반 시스템 개발쪽에 연관이 많은데 이런 회사들의 오퍼는 없었다.
최근 프로그래머들의 트렌드는 네카라쿠배 같은 IT 서비스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웹이나 서버쪽 프로그래머들을 주로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쪽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자바 스크립트나 파이썬, 자바 같은 언어를 주로 공부하거나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제조업을 떠나서 IT 서비스 기업에 가려면 이 언어들로 개발한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C, C++, Shell Script 등을 주로 사용하여 리눅스 시스템 혹은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던 프로그래머이다. 이들 IT 서비스 기업이 선호하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IT 서비스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자바 스크립트, 파이썬, 자바 같은 언어를 속성으로 공부해서 경력직으로 금새 이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베디드 쪽만 개발했던 난 주로 “제조업” 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조업”쪽에는 더이상 가고 싶지 않아서 IT 서비스 기업을 가야 하는데 당장 이직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주로 사용했던 C/C++ 등을 사용하여 개발을 하는 IT 서비스 기업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 서비스 기업들은 C/C++을 사용하여 개발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C++ 같은 경우는 윈도우즈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사용하긴 하지만 최근에 윈도으즈 어플리케이션은 C# 을 주로 사용하는 듯 했다. 즉 C++도 서비스 기업에서는 사양 추세인 듯 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회사는 리눅스 기반의 서버를 다루거나 프로그래밍을 하는 회사가 적절했다. 그런데 이들 회사들도 C/C++ 보다는 생산성이 높은 Node.js (자바 스크립트), 파이썬 등을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선호하는 듯 하다. 역시나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x86 기반의 시스템에 리눅스가 올라가는 서버를 다루는 회사를 찾았다. 작은 회사였지만 C/C++ 과 Shell Script 를 사용하여 장비를 개발하여 납품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에서는 Web GUI 도 다루면서 순수 리눅스 기반의 시스템을 개발하다 보니 내가 적응 하기에도 어렵지 않을 듯 했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제조업이 아닌 IT 서비스업 회사다. 이 회사에서는 제조를 하지 않고 x86 기반의 리눅스 서버에다가 C/C++로 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하드웨어 제조가 필요없다. 단순히 C/C++ 혹은 Shell Script 프로그래밍만 잘하면 된다. 아… 드디어 소프트웨어만 신경쓰면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회사에 지원했고 별 어려움 없이 합격했다.
예전에 2년동안 다녔던 IT 서비스 회사가 생각났다. 사실 이때부터 내가 리눅스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눈에 떴을때이다. 그 전에는 곁다리만 짚었다면 이때부터 C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에 본격적으로 배웠던 시기다.
처음에는 관리자로부터 많이 욕도 먹었고 시행착오도 겪기도 했다. 그런데 그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다른 곳을 갔을때부터 리눅스 기반의 시스템에 눈의 확 트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 2년은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던거 같았다.
다시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온 듯 했다. 당시만 해도 임베디드쪽 개발을 선호해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고 툴툴댔었지만 지금와서 볼때는 그때의 경험이 프로그래머로써는 너무나 소중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떠나 서비스 기업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미래…
이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제조업에 있을때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들과 많이 씨름을 했고 하드웨어 개발 이슈에 내가 많이 지원을 했고 리소스를 쏟았다. 하지만 여긴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오직 “프로그래밍”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도 확 바뀐 듯 했다. 전 같으면 책상에 개발 보드와 시리얼 통신 케이블, 온갖 부품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져 있었고 “실험실”이라는 장소가 존재했다. 실험실에는 각종 도구들과 개발보드, 인두기, 테스트 장비 등이 있었고 이곳에서 한번 끌려 들어오면 몇시간이고 있던 적이 허다했다.
하지만 현재는 위의 그림처럼 사무실에 단순히 책상과 파티션, 노트북과 키보드 및 마우스만 있다. 책상도 깔끔하고 너저분하지 않다. 그리고 별도의 “실험실”이 없으니까 내 자리에서 집중할 시간이 있어서 훨씬 내 입장에서는 환경이 낫다고 볼 수 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직전 회사에서 위에서 언급했던거 같이 여러가지 단점으로 인해 마음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현 회사는 훨씬 괜찮은 환경이다. 출퇴근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면 된다. 야근을 강요하지 않으며 대다수의 프로그래머들이 6시가 되면 알아서 퇴근하는 분위기다. 전 회사에서 매일같이 저녁을 먹으며 야근을 했던 것에 비하면 어색할 정도다.
더군다나 프로젝트도 1개만 진행하며 그 프로젝트에 나 포함 5명이 들어가 있어서 일의 배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 회사처럼 한 사람이 2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던 상황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셈이다.
이제서야 생활의 여유도 생긴 듯 하다. 집에 빨리 퇴근하여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 시간이 늘어났고 가족들도 좋아했다. 그동안은 가장으로써 역할만 충실했지 가족들의 곁에 많은 시간을 있지 못했는데 이제는 곁에 있을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즉 워라벨이 좋아진 셈이다.
이로써 내가 제조업을 떠난 이유가 더욱더 증명이 된 듯 하다. 물론 현재 회사에서 좀 더 일하다 보면 여러가지 단점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회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수직적으로 찍어누르거나 프로그래머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는 잘 하지 않는다. 이 밖에 제조업 회사들에서 겪었던 여러 단점들이 일부 해소가 되었다.
사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연봉”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봉은 중소기업에서 주는 수준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단점이 어느정도 해소되고 내가 프로그래밍에 집중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제 난 x86 서버에 올라가 있는 리눅스 기반의 시스템에서 C/C++/Shell Script로 프로그래밍만 잘하면 된다. 그 외에는 별도의 스킬이 필요하지 않다. 예전처럼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하드웨어 이슈나 디버깅을 하기 위해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상과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급박한 일정을 쫓으면서 프로젝트 2개 이상 동시에 진행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제조업을 떠나 IT 서비스 회사로 이직은 성공하였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이제 프로그래밍을 잘 해야 하고 최근에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 같은 언어들을 이용한 프로젝트도 직접 해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향후에는 “괜찮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물론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아예 접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난 여전히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시스템을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고 있다.
임베디드 리눅스의 개념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베디드 시스템은 내 개발 방향 범주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향후에도 계속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시스템 개발은 회사에서는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남는 시간에 이 사이트에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미 누구에게나 접근이 쉬운 범용 하드웨어인 “라즈베리파이” 같은 시스템으로 임베디드 리눅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다.
난 우리나라의 “제조업 회사”들이 마음에 안들었던 거지 “임베디드 리눅스 소프트웨어”가 마음에 안든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제조업 회사들의 마인드가 바뀐다면 난 언제든지 제조업 회사로 돌아갈 의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 결코 대한민국의 제조업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내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참 현실이 안타깝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는 향후에도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점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으로 인해 우리 실생활의 모든 도구들에 소프트웨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우리 아이에게 사준 장난감이 있었다. 그것은 “세이펜” 이다.
세이펜은 펜 모양의 MP3 재생 플레이어 같이 생겼다. 그런데 이 세이펜으로 책이나 인쇄물에 팬을 가져다 대면 가져다 댄 그림이나 글씨를 인식하여 미리 저장된 음원을 재생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이 음원으로 그림이나 글씨가 어떤 의미인지 들을 수 있다.
위 그림이 “세이펜”의 모습이다. 마치 몽땅연필같이 생겨서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디자인이다. 이 펜을 그림이나 글씨에 가져다 대면 연관된 음원을 재생시킨다는 점이 나름 신기했다.
아마 세이펜 연필심 쪽에 센서나 작은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그림이나 글씨를 패턴 매칭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인식한 데이터를 음원이랑 매칭 시키는 방식인 듯 한데,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임베디드 리눅스가 올려져 있을까? 아니면 32 bit CPU인 ST 마이크로사의 CPU를 사용하여 펌웨어로 구현했을까?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임베디드 장치”가 그만큼 우리 생활에도 친숙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세이펜 제조사는 나름 아이템 선정이 괜찮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현재까지 “세이펜”을 통해 매출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세이펜 뿐만 아니라 임베디드 장치/장비가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는 사례는 꽤 많다.
이처럼 임베디드 시스템은 향후에도 전망은 밝다. 대신에 국내 제조사의 환경이나 대우는 아직도 열악하다. 경력 15~20년차의 임베디드 프로그래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다. 늘 일자리는 있지만 국내 제조사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며 내가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을 고스란히 다들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급 수준의 임베디드 프로그래머들이 자꾸 제조업을 떠나고 있다. 또한 나도 그렇게 느껴서 제조업을 떠났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 인력은 늘 부족하다고 하지만 대우가 나쁘고 근무 환경이 나쁘다 보니 인력을 채워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 그리고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제조업 기업들의 CEO와 관리자들…
현재 신입 프로그래머들은 임베디드 분야와 제조업 회사들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훨씬 많은 인력이 종사하고 연봉과 대우가 좋은 IT 서비스 기업으로 가려고 한다. “네카라쿠배”는 이 좋은 기업들의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나 같아도 제조업 회사가 이렇다고 하면 제조업 회사를 가지 않을 것이다. PC와 키보드 마우스만 있으면 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이제 IT 쪽도 더이상 프로그래머들이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저임금 장시간 근무같이 “열정 페이”를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로 일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도 그런 환경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기업 문화가 잘못되었고 이제 어느정도 정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제조업” 회사의 CEO나 관리자들도 이제는 그런 상황을 직감해야 한다. 단순히 연봉만 많이 준다고 해서 프로그래머들이 제조업을 가려고 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했던 기업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면 더이상 제조업으로 가려는 프로그래머들은 없을 것이고 탈출하는 인력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향후 전망은 밝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담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산업. 나 조차도 얼마전까지 전망이 밝다고 언급했었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나도 “제조업”을 떠나게 되었다. 국내 제조업은 전세계적으로 꽤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래를 봤을때는 글쎄요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제조업 기업이 성장하려면 아마도 “프로그래머”들을 잘 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단점이 많은 상황에서 제조업에 들어올 프로그래머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나마 기업 규모가 크고 인력이 많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같은 회사들만 살아남을지 모른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나조차도 제조업으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듯 하다….